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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0월 15일

Culture

래블업 합류기: 기술 회사에서 마케터의 역할

  • 임소영
    임소영테크니컬 콘텐츠 마케터
래블업Retrospect

2026년 10월 15일

Culture

래블업 합류기: 기술 회사에서 마케터의 역할

  • 임소영
    임소영테크니컬 콘텐츠 마케터
래블업Retrospect

안녕하세요, 래블업의 테크니컬 콘텐츠 마케터 임소영입니다.

9월 23일 기준 이 회사에 합류한 지 이제 딱 6개월이 됐네요, 사실 저는 광고 대행사와 마케팅 대행사에서 AE(Account Executive)로 커리어를 쌓아 오다가, 래블업의 기술과 'Make AI Accessible'이라는 비전과 미션에 크게 공감해 여러 번 문을 두드린 끝에 마케터로 합류할 수 있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R&D 비중이 큰 기술 회사에서 보낸 6개월 동안 느낀 점과, 래블업 같은 기술 회사에서 마케터의 역할은 무엇일지 회고해 보려 합니다.

걱정과는 달랐던 첫 주

에이전시에 있을 때는 개발자나 리서처보다 마케터와 일하는 경우가 많았어서 래블업 합류 전에는 개발자 분들과 어떻게 소통해야 할지 걱정이 많았습니다. 기술 중심 회사에서 마케터인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고 어떤 부분에 기여할 수 있을지도 잘 그려지지 않았죠.

입사 첫 주에 가장 놀랐던 부분은 딱 두 가지였는데요. '개발자와 연구자가 한 회사에 이렇게 많다고?', 그리고 '비개발자도 AI를 이렇게 잘 활용한다고?'였습니다. 입사 후 시작된 온보딩부터 HR 담당자분이 AI와 함께 구축한 잘 짜인 프로세스였고 둘러보니 직무와 상관없이 모두 AI와 함께 일하고 있었습니다.

개발자와의 첫 소통도 걱정과는 달랐습니다. 어디서부터 질문해야 할지 몰라 많이 망설였는데 돌아온 답은 "어디서부터 모르겠는지 말해 주면 된다"였습니다. 모르는 걸 모른다고 말하면 거기서부터 함께 풀어 가면 되는 거였죠.

기술부터 배우는 일

솔직히 말하면 입사할 때 저는 GPU 분할가상화(Fractional GPU)도, 쿠버네티스(Kubernetes)도, KV 캐시(KV cache)도 정확히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말 그대로 100% 마케팅 인간이었죠. 입사하자마자 리서치팀 인터뷰를 진행했는데, 인터뷰 내내 오간 이야기를 거의 알아듣지 못해서 굉장히 멘붕이었습니다.

그래서 기술 소개 자료를 처음부터 꼼꼼히 읽어보기 시작했습니다. 모르는 부분은 콘텐츠팀의 진호님께 여쭤보고 AI에게도 물어봤는데 가장 도움이 많이 됐던 건 래블업 컨퍼런스 발표 영상이었습니다. 용어를 익히고 나서 카피를 쓰기 시작하자 계속해서 틀리는 부분은 오히려 용어보다는 그 용어가 가리키는 범위였습니다. 처음 제작한 전시 부스 백월에 'AI 가속기 제조사 12곳 이상'이라고 적었다가 '12종 이상의 AI 가속기'로 고친 적이 있었는데요, 정확히 확인해 보니 숫자 12는 지원하는 가속기 모델의 수였습니다. 그때 숫자가 가리키는 의미 하나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면 포인트와 주장이 달라지고, 콘텐츠를 읽는 독자에게 큰 오해를 낳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제 좀 알겠다' 싶었던 건 부스 백월을 꾸준히 만들기 시작하면서 소셜미디어에 테크니컬 콘텐츠도 올릴 때였습니다. 우리 기술이 다른 회사의 기술과 무엇이 다른지, 그래서 무엇을 내세워야 하는지를 스스로 정리할 수 있게 됐을 때였죠. 프로덕트와 세밀한 기술을 부르는 이름 하나를 적을 때도, 그 단어가 이미 다른 기술의 역할을 가리키고 있지는 않은지 찾아보게 되었습니다. 요즘은 기능을 설명하기 전에 이 기술이 왜 사람들에게 필요한지, 이 글이 왜 필요한지를 먼저 고민하고 있습니다.

문장 하나에 책임지기

문장 하나를 두고 가장 오래 고민했던 건 KCC 부스 백월을 처음 만들 때였습니다.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는 분명했는데, 그걸 한 줄로 뾰족하게 다듬는 게 어려웠습니다. '장비는 있는데, 누가 뭘 쓰는지 보이시나요?'라는 질문은 여러 번 고친 끝에 '사용 현황이 안 보이고 유휴 장비가 방치되고 있나요?'로 결정을 했고 예시로 넣은 CUDA와 TensorFlow 버전이 실제로는 함께 쓸 수 없는 조합이라 인쇄 전에 고친 일도 있었고요.

소셜미디어에 올린 KV 캐시 오프로딩(KV cache offloading) 소개 글에서도 옮기는 대상을 '세션'이라고 썼다가 '세션의 KV 캐시'로 바로잡았고, 효과를 '더 긴 컨텍스트'라고 쓴 부분도 '동시 처리량 증가'로 고쳤습니다. AI가 초안을 빠르게 써 주는 만큼, 그럴싸하게 틀린 문장을 잡아내는 건 결국 제 일이었습니다.

이런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기술 회사의 카피는 멋진 표현보다 틀리지 않는 게 먼저이고, 문장은 단순하고 효과적일수록(simple and effective) 좋다는 걸 배웠습니다. 여기까지 오는 데 가장 큰 도움이 된 건 래블업 구성원분들의 검토와 피드백이었습니다. 혼자서는 보이지 않던 부분을 동료들이 짚어 주었고, 그래서 지금도 외부에 테크니컬한 문장을 내보내기 전에는 혹시 숲이 아닌 나무만 보지는 않았는지 반드시 한두 명에게 검토를 부탁하고 있습니다.

행사의 처음부터 끝까지

AI Expo.jpeg
대행사에서 AE로 일할 때는 주로 브랜드 행사를 많이 맡았고, 제가 오너십을 갖기보다 클라이언트 기업의 니즈에 맞추는 일이 먼저였습니다. 래블업은 국내외 AI 행사에 자주 나가 많은 고객사, 잠재 고객을 만나고 있기에 입사 초반에는 행사마다 기획 의도가 무엇인지, 우리가 이 행사에 왜 나가는지, 여기서 어떤 메시지를 강조해야 하는지를 스스로 따지는 일이 결코 쉽지 않았습니다.

입사 후 국내에서 처음 참여한 AI EXPO KOREA 2026은 지금도 가장 기억에 남는 행사입니다. 우리 프로덕트가 실제로 어떻게 쓰이고 있는지, 어떻게 쓰일 수 있는지를 보여 줘야 한다고 생각했고 구성원분들과 논의해 AI:GO를 처음으로 전면에 내세웠습니다. 행사 전에는 소셜미디어에서 초대권 이벤트를 진행했고 행사 기간에는 합류 후 처음으로 소셜미디어에 부스 소식을 올렸습니다. 행사의 처음부터 끝까지 처음으로 직접 맡아 본 셈입니다.

해외 행사 중에서는 직접 가 보지 못한 GITEX AI EUROPE 2026이 가장 기억에 남는데요, 부스를 지킬 구성원분들과 미리 의논해 현지 분위기와 강조할 포인트를 잡았지만 행사가 끝나고 들어 보니 저희가 생각했던 타겟과는 다른 분들이 부스를 방문하셨습니다. 제가 그렸던 모습과는 사뭇 달랐던 거죠. 미리 가정을 세워 둬도 막상 현장의 분위기도 타겟도 달라질 수 있다는 걸 그때 배웠습니다. 그래서 팔로우업 메일은 실제로 방문하신 분들을 분석하고 그분들이 관심을 가질 만한 Backend.AI 기능을 고려하며 작성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여러 행사를 치르면서 '마무리 콘텐츠와 팔로우업 메일까지 한 흐름으로 잘 진행돼야 행사가 깔끔하게 끝난 거구나'라는 걸 몸소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숫자로부터 배운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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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마케팅의 본질은 데이터 기반 의사결정이라고 생각합니다. 구성원을 설득할 때도 결국 수치가 있어야 이야기가 통하기에 래블업에 합류하면서 데이터를 쌓고, 쌓인 데이터를 바탕으로 다음 마케팅 액션 플랜을 건설적으로 설계하는 마케팅을 하고 싶었습니다.

입사 후 처음 집행한 유료 광고는 7월 ICML 2026 기간의 MLxcel 광고였습니다. 학회 기간에는 머신러닝 연구자들이 코엑스에 많이 모이는 만큼, 애플 실리콘용 오픈소스 추론 엔진인 MLxcel을 코엑스 반경 1km로 좁힌 지역 광고로 알리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후반 사흘에는 같은 수의 사람에게 광고를 보여 주는 비용이 전반의 두 배 가까이 올랐고, 기간이 짧고 지역이 좁은 광고는 닿을 수 있는 사람이 금방 한계에 이른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그래서 다음 광고부터는 기간을 2주로 잡고 7일째에 새로 보는 사람이 늘지 않으면 일찍 마무리하는 기준을 두었습니다.

뉴스레터 역시 매달 결과 리포트를 만들며 다음 호의 방향을 정했습니다. 5월호에는 MLxcel 공개 소식을 국문호와 영문호에 똑같이 실었는데, 국문호는 클릭한 사람이 늘어난 반면 영문호는 크게 줄었습니다. 해외 독자는 회사 소식보다 엔지니어링 글에 더 반응한다고 판단해 7월호부터 영문호 맨 위에 기술 글을 배치했고, 8월호에서는 이메일 내의 엔지니어링 콘텐츠 클릭률이 두 배로 늘었습니다.

데이터와 숫자는 늘 제가 세운 가정대로 움직이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그때마다 데이터를 기반으로 다음을 위해 무엇을 바꿔나가야 할지는 더 명확하고 분명해졌고 결국 기술 회사의 마케터에게 있어서 데이터는 다음 결정을 위한 근거라는 걸 배웠습니다.

혼자서도 잘 굴러가는 시스템 만들기

UTM Tracking.png
UTM 링크 만들기, 행사 참가자 명단 정리, 뉴스레터 발송처럼 매번 반복되는 일이 늘다 보니 기억에만 의지해서는 언젠가 하나쯤 놓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반복되는 일은 사람이 일일이 기억하지 않아도 되도록 도구와 규칙으로 만들어 두기로 했고, 그중 하나가 UTM Builder입니다. 온라인 채널에는 UTM(링크에 붙여 어디서 들어왔는지 구분하는 값)을 붙여 쓰고 있었지만, 오프라인 행사에서 쓰는 숏링크로는 몇 번 클릭됐는지만 알 수 있었습니다. 숏링크에도 UTM을 넣으면 온라인, 오프라인, PR 채널을 같은 기준으로 비교할 수 있었고, 누가 링크를 만들든 같은 규칙을 따르도록 아예 웹 도구로 만들었습니다. 헬름 차트(Helm chart)가 뭔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시작했지만, AI에게 하나씩 물어 가며 사내 서버에 직접 올렸습니다.

행사 참가자 명단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행사마다 명단 형식이 제각각이라, 지역별로 나누고 같은 열 구성으로 맞추는 정리 기준을 만들었습니다. 이제는 명단이 어떤 형식으로 들어와도 한 번에 리드를 정리할 수 있습니다.

AI도 동료처럼 쓰지만, 일을 맡기기 전에 규칙부터 세웠습니다. 사실 AI가 쓴 국문 카피가 영어를 옮긴 것처럼 읽히는 게 가장 큰 스트레스였는데요, 그래서 국문 카피를 쓸 때마다 직역을 막는 체크리스트를 자동으로 불러오게 했습니다. 글을 쓰는 단계와 사실을 확인하는 단계도 나눠서, 검토를 거치지 않은 문장은 밖으로 나가지 않도록 하고 있습니다. 맡은 일이 많을수록, 제가 없어도 같은 결과가 나오는 기준을 먼저 만들어 두는 게 중요하다는 걸 배울 수 있었습니다.

기술 회사 마케터의 역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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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개월을 돌아보면, 결국 기술 회사의 마케터는 엔지니어의 언어와 시장의 언어 사이를 좁히는 사람이 아닐까 하는 결론에 다다랐습니다. 래블업이 만든 기술을 고객이 알아들을 수 있는 말로 옮기되, 제가 전하는 기술 이야기가 사실에서 벗어나서는 안 됩니다. 그렇게 옮긴 문장을 내보내기 전에 마지막으로 확인하는 사람이기도 합니다. 소셜 게시물 한 줄, 뉴스레터 한 문단도 밖으로 나가는 순간 회사의 목소리가 되니까요.

온보딩 기간부터 지금까지 저희 콘텐츠팀의 진호님과 주변 구성원분들이 없었다면, 기술의 기도 모르던 제가 기술 회사의 마케터로 빠르게 성장하기는 결코 쉽지 않았을 겁니다.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해 볼 수 있도록 운동장을 내어 주고, 그 운동장에서 크게 넘어지지 않게 옆에서 함께 달려 준 러닝메이트이자 페이스메이커분들이 계셨기에 이 모든 게 가능했습니다. 이 자리를 빌려 고마운 마음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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